과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최근 유전 공학, 나노테크놀로지, 머신 러닝, 로봇 공학 등에서 우리는 종 간의 경계를 넘어설 만큼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어내고 있다. 인간을 닮은 로봇, 바이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의 생명 연장, 인간이 생각해오던 전통적 가치의 생명은 과학 기술에 의해서 그 정의가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이에 인간의 종의 경계는 더 이상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해오던 자연 그대로의 생명체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그간 세분화하여 연구해오던 각 분야에서 융합의 움직임을 띠며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발맞추어 인간 정체성과 인식 구조, 생명의 정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은 바야흐로 기계와 함께 공진화의 관점에서 기술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닮은 형태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인간이 무언가를 예술적으로 재현하고 창조하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빈번하고 치열하게 제작한 대상은 바로 인체일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인체 작품인 동굴 벽화를 비롯하여 인체 드로잉, 인물화, 그리고 정적인 인체 조각이나 인형에서 연결되어 동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오토마타를 거쳐 인간형 로봇까지, 인체는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예술작품의 가장 오래되고도 진지한 소재이자 주제였다. 인간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낸 인형에 기계적 메커니즘(mechanism)을 이용하여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는 오토마타(automata)를 그 시작으로 볼 수 있겠다.

인간형 오토마타는 그리스어 ‘autos(자신)’와 ‘matos(운동하다, 사고하다, 뜻하다)’의 합성 명사인 오토마톤(automaton)의 복수형이다. 그것은 17 세기 유럽에서 사용되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살아있는 존재’ 혹은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인형’의 의미로 통칭되었다(이재준, 2018). 오토마타는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의 소화시키는 인공오리, 자크-드로즈(Pierre Jaquet-Droz)가 만든 글을 쓰는 기계장치 자동인형 등을 필두로 에디슨의 말하는 인형을 거쳐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닮은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를 하며 발전하였다.
사람을 닮은 예술 인형을 만들고 기계장치를 넣어 움직임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현대에 이르러 시도되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적인 움직임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본디 테크닉의 어원인 테크네는 ‘예술+기술’ 이었다. 19 세기 낭만주의에 이르러 예술적 창조와 기술이 완전히 분리되어 예술가들이 기술의 ‘반복성’과 ‘자동성’을 경시하며 기술 혐오의 움직임을 보이게 되면서 예술에서의 기술은 저급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예술 창조의 과정에서 기술의 부재는 ‘정신/물질’의 분리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의 기술은 예술 창조의 테크닉이 될 수도 있고, 현재의 융합적 테크놀로지가 될 수도 있다.

바야흐로 인체를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욕망은 생명을 창조하고자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로봇 인형이 기계장치를 달고 전시장에 설치가 되거나 연구실에서 연구 로봇으로 제작되는 형식으로 오토마타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로봇은 예술과 과학기술의 합(合)으로써 생명체를 닮은 움직임을 가진 정교한 존재로 발전하고 있다. 이 두 조합에 있어서 어느 하나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즉 미적으로 부족한 외형이나 기술적 한계 등으로 어색한 움직임이 있다면 그 로봇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없다. 최근 과학 기술과 예술 간 융합적 발전으로 인체의 메커니즘(Mechanism)에 더욱 가까운 살아있는 듯한 인간형 로봇들을 제작해내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로봇은 주로 사람의 일을 도와주고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그 외양이나 느낌이 사람에게 친근하고 낯설지 않아야 한다.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시 마사히로는 로봇의 호감도를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 로봇에 인간의 외관을 주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유사성에 비례하여 호감도가 증가하지만 어느 순간 로봇이 사람과 너무 닮으면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위에 보여지는 그래프에서처럼 이 섬뜩함은 로봇이 사람과 점점 닮아갈수록 깊은 골짜기처럼 내려갔다가 로봇이 인간과 거의 구분할 수 없는 정도가 되어야 극복되기 시작한다. 이를 불쾌한 골짜기, 즉 언캐니밸리(Uncanny Valley) 라고 한다.